사유하는 삶
늘 다짐하는 것이지만 '사유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새해의 다짐이라 하기엔 너무 발효되다 못해 썩어 문드러진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우린 멀쩡한 두뇌를 달고 어이없는 결정들을 너무 쉽게 내려버리거나, 아무런 필터링 없이 현상을 받아들이기를 무한 반복합니다.
한나 아렌트(Johanna Cohn Arendt)는 "우리가 사유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사유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유란 우리가 어떤 문제난 상황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그 본질을 이해하려는 능동적인 사고 과정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사유하며 살만큼 회로를 잘 돌리며 지내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자의던지 혹은 타의던지 우린 충분히 사유하지 못합니다. 그저 먹고 사는 데 너무 바쁘고, 과도한 정보에 노출되어 수동적인 사람이 되어갑니다. 이로서 우리는 인간이 아닌 인간이 되기에 너무 쉬운 존재입니다.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나치의 아돌프 아이히만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나는 명령에 따랐을뿐"이라 주장하며 그 책임을 외면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 표현했습니다. 즉, 사유하지 않는 사람들은 스스로 악한 의도를 가지지 않더라도 무지와 무관심 속에서 거대한 부조리와 폭력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해 12월 3일 우리는 국가 지도자의 무책임한 도발로 아직까지 국가 전체가 혼돈에 휩싸여 있고, 그를 따르는 부역자들은 자신의 과오에 대해 인식을 못하고 있는듯 합니다. 그들은 왜 이런 부조리하고 부정의한 명령에 대해 잘못을 인식하지 못할까요? 아마도 사유가 부족하지 않을까요?
다행히도 우리 국민은 집단지성을 발휘하여 이를 막아내고 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의 사유가 얼마나 중요하며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아렌트가 던진 메시지는 단순히 철학적 논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더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지침입니다. 오늘 하루,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세요.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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